김연아. 티 없이 맑다. 2010 겨울올림픽의 별이다. 김연아를 떠올리면 즐겁다. 혼신의 힘을 다한 얼음 위의 열연은 아름답다. 김연아가 세계신기록으로 금메달을 따던 순간, 난 생중계를 보지 못했다. 충청도에서 강연이 있었기에 기차를 타고 있었다. 하지만 마침내 해냈다는 사실은 알았다. 기차 칸 곳곳에서 큰소리로 응원하거나 감탄하는 목소리가 곰비임비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역에서 내려, 마중 나온 젊은 벗의 차를 탔다. 지역에서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복지운동을 하는 그는 내가 옆자리에 앉자마자 물었다.“김연아 경기 못보셨죠?”그는 대답을 기다리기도 전에 운전석 앞에 놓인 작은 텔레비전을 틀어주었다. 어느새 녹화해둔 김연아 경기였다. 처음으로 가까이서 끝까지 보았을 때 가슴이 뭉클했다. 김연아가 우아하게 손끝으로 긋는 선은 우리 고유의 율동을 담고 있기에 더 그랬다. 김연아가 경기를 마친 순간 눈물을 쏟는 모습에선 콧잔등이 시큰했다. 대견스럽고 자랑스러웠다. 김연아 맑은 이미지 이용하는 사람들에 대한 성찰 어느새 김연아는 국민 대다수의 마음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공인이다. 절망스런 현실에 잠긴 사람들에게 잠시나마 즐거움을 준다는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귀한 존재인가. 그래서다. 김연아가 텔레비전 광고모델이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김연아를 비판하는 ‘엄격한 사람’들에 동의할 뜻은 없다. 다만 김연아도 이제 어엿한 대학생이라면, 젊은 지성인으로서 한 번쯤 성찰할 지점은 있다. 자신의 맑은 이미지를 이용하는 사람들이다. 지금 당장 성찰해야 한다고 강권할 생각은 없다. 조금은 한가할 때, 진솔하게 톺아보길 제안할 따름이다. 기실 김연아보다는 김연아를 사랑하는 국민 대다수와 진실을 나누고 싶다. 김연아 즐거움에 은폐된 서러움이 그것이다. 김연아가 온 국민에게 즐거움을 선물한 날, 내가 충청도에서 어줍짢게 새로운 사회의 희망을 강연하던 날, 바로 그날 강연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태안에선 한 어민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삼성을 원망하며 죽은 사람들 겨울올림픽에 묻혀 2007년 태안 앞바다 기름 유출 사건으로 빚어진 네 번째 희생자다. 고 성정대 전 피해민 손해배상 대책위원장. 고인은 삼성을 원망하며 자살했다. 한 네티즌이 삼성에게 “김연아 응원할 정신 있으면 태안주민 자살 막아라”고 절규한 이유다. 김연아가 귀국하던 날, 고인의 장례식이 태안군민장으로 열렸다. 고인은 자살하던 날도, 장례를 치른 날도, 김연아에 묻혔다. 물론, 김연아의 잘못은 전혀 아니다. 신문과 방송의 잘못이다. 즐거움에 묻힌 서러움은 더 있다. 고 성정대 위원장이 묻힌 날, 삼성반도체에 다니다 스물 둘 꽃다운 나이에 희귀병으로 숨진 황유미의 3주기 추모행사가 열렸다. ‘반도체 노동자 인권지킴이 반올림’과 전국금속노동조합은 삼성 본관 앞에서 고인을 비롯해 반도체 공장에서 애면글면 일하다 희귀병으로 목숨 잃은 노동자들의 추모주간을 선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하지만 그 기자회견도 묻혔다. 삼성의 광고모델로 날마다 나오는 김연아의 맑은 얼굴이, 그 아름다운 열연이 안타까운 심경은 나만이 아닐 터다. 티 없는 김연아의 맑음에 스멀스멀 스며오는 저 탁류를 굳이 경계하여 쓰는 까닭이다. 삼성과 그에 부닐고 있는 언론을 새삼 고발하는 까닭이다. 손석춘 2020gil@hanmail.net* 이 글은 ’손석춘의 새로운 사회’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블로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