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의 술, 20대 여직원의 한

By | 2010-02-05T11:27:28+00:00 2010.02.05.|

삼성그룹의 힘은 어디까지일까. 과대평가할 일도, 과소평가할 일도 아니다. 있는 그대로 보는 게 중요하다.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 비자금을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과 함께 낱낱이 고발할 때, 이건희 회장이 그 상황을 어떻게 빠져나갈 수 있을까 궁금했다. 결국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고 이건희 회장은 감옥 한 번 들어가지 않은 채 사면까지 챙겼다. 김 변호사가 최근 출간한 책 <삼성을 생각한다>도 언론으로부터 외면 받고 있다. 저자나 출판사 모두 기사를 기대하지는 않았을 터다. 문제는 신문시장을 독과점한 신문사들이 돈을 내고 광고를 하겠다는 데 그조차 이런저런 이유로 거부한다는 데 있다. 아직 그 책을 읽지는 않았다. 다만 <한겨레21> 정혁준 기사가 책 출간을 앞두고 김 변호사와 나눈 기사만 읽었을 뿐이다. 기사를 읽던 내 눈길을 단숨에 끈 대목이 있다. “생일날에도 이 전 회장은 달랐다. 손님들에겐 냉동 푸아그라(거위 간 요리)가 나왔으나, 이 전 회장 부부에게는 냉장 푸아그라가 나오더라. 이 전 회장은 1천만원 짜리 와인을 마시고 있었다. 이 전 회장 집에 1층과 지하를 연결하는 엘리베이터가 있어 놀라웠다. 장롱은 유명 명인이 만들었고, 어떤 방에는 골프채가 그득했다.” 1천만원짜리 술, 거위 간 요리와 먹는 이건희 ‘거위 간 요리’는 짐작이 잘 가지 않는다. ‘와인’은 다르다. 1천만 원짜리 술을 마시는 이건희의 모습이 떠올랐다. 실소를 참으려 그냥 넘어갔다. 기실 대자본가의 과시적 행태가 결코 새삼스런 일은 아니잖은가. 애써 잊으려했다. 미국의 자본가들도 19세기에 100달러짜리 지폐로 담배를 말아 피우지 않았던가. 하지만 최근 출간된 <삼성반도체와 백혈병> 책을 읽으면서 나는 끝내 분노를 삭일 수 없었다. 시인 박일환이 반올림(반도체노동자의건강과인권지킴이,http://cafe.daum.net/samsunglabor)과 함께 쓴 그 작은 책에는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 일하다 스물 세 살의 나이에 핏빛 한을 남기고 숨진 황유미의 삶과 죽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반올림에 따르면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이나 림프종 등에 걸려 사망하거나 투병 중인 노동자들이 20명이 넘는다. 황유미도 그 가운데 하나다. 황유미가 치료받고 있을 때 삼성반도체는 강원도 속초에서 택시를 모는 아버지 황상기씨를 만나 “사표를 내면 (병원비를) 다 물어 주겠다”고 약속했단다. 하지만 정작 사표를 내자 태도가 바뀌었다. 현금 500만 원을 들고 와서 “이것밖에 없으니 이것으로 끝내자”고 했다. 당시 병원비는 8000만 원이었고, 사내모금으로 4000만 원은 그 이전에 받았다. 병원비를 “다 물어 주겠다”던 약속과 달리 500만원만 달랑 내미는 모습을 어떻게 보아야 옳은가. 물론, 생전의 고인과 가족이 요구한 산재처리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던 황유미의 피맺힌 죽음 모든 선입견을 버리고 사실만 주목해보자.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던 스물 세 살의 여직원(여성 노동자)이 병으로 숨졌다. 고인이 일하던 일터에서 발암물질이 발견됐다. 같은 병으로 죽거나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이 줄 서 있다. 그럼에도 삼성은 스물세 살에 죽은 여직원의 유족에게 약속과 달리 남은 병원비 4000만 원 가운데 겨우 500만원을 주며 “이것밖에 없다”고 했다. 조용히 묻는다. 과연 삼성이 ‘그것’밖에 없는가? 죽은 여직원의 총수 이건희는 1000만 원짜리 술을 거위 간 요리와 함께 즐긴다. 과연 우리가 지금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가? 과연 지금이 21세기 민주주의 사회인가? 문득 저 조선시대 <춘향전>의 이몽룡 시 첫 구절이 떠오른다. 金樽美酒千人血 玉盤佳肴萬姓膏 손석춘 2020gil@hanmail.net* 이 글은 ’손석춘의 새로운 사회’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블로그 바로가기)

6 개 댓글

  1. pioneer 2010년 2월 7일 at 12:00 오후 - Reply

    가장 아래 한문의 뜻을 잘 모르겠네요. 국역도 같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2. 2020gil 2010년 2월 8일 at 8:25 오전 - Reply

    일부러 그렇게 썼습니다. 불편하시더라도 독자 스스로 살펴보시는 게 음미하는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3. kgs5468 2010년 2월 8일 at 9:42 오전 - Reply

    읽는게 불편한게 아니라 그들과 우리들의 삶과 생각이 다르다는 것이 화가 나고 왠지 울분이 나네요.

  4. portoce 2010년 2월 8일 at 9:07 오후 - Reply

    헐 저 시는 7차 교육과정에서 나오는 춘향전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금잔의 맛있는 술은 천인의 피요, 옥으로 된 상의 맛있는 고기는 만인의 눈물이다.
    신자유주의적으로 보자면 소득이 우리와 다르니 그정도 소비하겠다는데 우리가 말리거나 검소를 바랄 필요는 없을 것 같기도 합니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우리처럼 어떻게 돈을 모아서 살아볼까가 아니라 대부분 “오늘은 무엇을 먹어볼까….”가 고민이기도 하더군요.
    삼성전자 월급은 좀 많을지 모르지만 일하는 환경이 좋지 않습니다.
    저도 부근에 살아보니 먼지가 아주 안좋더군요

  5. hsuji2 2010년 2월 10일 at 8:13 오전 - Reply

    새사연 부산 모임에서 제가 말했습니다. 물질에 의미를 두지 않는 삶도 얼마든지 인간적이고 행복할 수 있으니 우리는 우리 식대로 살고 가치관이 다른 그들은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살게 두자고요. 그런데……………………………………..그들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은 잊고 내뱉은 무지한 발언이었습니다. 당장 제 동생이 살인적인 노동 시간을 적은 월급으로 견뎌내고 있는 걸 보면서요. IMF 때 다니던 회사가 망하고 또 망하고 의욕적으로 시작한 사업도 망하고…제 동생 이야기입니다. 부산공대 기계설계과를 나온 동생은 믿어지지 않는 월급을 받으면서 회사가 요구하는 대로 일주일 중 사흘을 회사에서 밤을 샙니다. 가족을 돌볼래야 돌볼 수 없게 하는 직장, 성실하고 가정적인 제 동생이었지만 자식과도 불화하고 아내한테는 결국 이혼 당했습니다. 소띠 제 동생은 50이 되도록 소처럼 일만 하는군요.

  6. portoce 2010년 2월 11일 at 11:39 오전 - Reply

    문제는 소비를 통해 산업이 돌아가고 자본주의가 유지된다는 것입니다.
    대량생산 대량소비, 물질이 없이는 욕망도 없고 소비도 없습니다.
    정신적으로만 사는 것도 어느정도 보장이 되어야 가능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것을 국가가 책임질 수 있느냐는 또 비관적입니다.
    세금은 높아지고, 새는 곳도 많고 기타등등.
    지금 한국사회의 구조로 이렇게 돌아가는 것도 용할 정도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사회 철학부터 어릴때부터 잡고 키워야 할 겁니다.
    지금 학교는 거의 이런 철학이 아니라서 가망성은 없다고 봅니다.
    솔직히 이런 이야기와 같은 것이죠.
    50년대 살았던 어른들이 그때 태어난 아이들에게 “이 친구들이 성인이 되면 군대 안가겠구만…’ 그 희망은 무참히 깨어져 지금도 문제입니다.
    우리의 현실은 언제나 이상과 괴리된 것도 이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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