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좋은 싫든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이다. 젊은이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기업에서도 1위다. 보도자료를 내 밝혔듯이 2009년 사상 최대 실적을 내며 세계 전자업체 1위 자리에 올랐다. 신문과 방송이 대서특필했다. 홍보효과도 뛰어났다. 기실 사실 아닌가. 삼성전자가 발표한 2009년 실적은 놀랍다. 2008년에 견줘 영업이익이 91.2퍼센트나 늘었다. ‘매출 100조 원-영업이익 10조 원’의 한 해 동시 달성을 국내 기업 처음으로 기록했다. 미국 휴렛패커드와 독일 지멘스를 제쳤다. 문제는 비단 그것만이 사실은 아니라는 데 있다. 또 다른 사실에 눈 돌릴 때다. 축배에 어느새 묻히고 있지만 삼성전자 부사장 고 이원성을 톺아보자. 삼성전자 부사장의 비극적 죽음과 저들의 축배 2010년 1월 26일 삼성전자 부사장급인 이원성은 자신이 살고 있던 서울 삼성동의 고층아파트에서 몸을 던졌다. 고통으로 신음하던 그를 발견한 경비원들이 급히 병원으로 옮겼지만 곧 숨을 거뒀다. 고인의 자살을 두고 여러 말이 오갔다. 하지만 보유한 주식만 70억 원이 넘어서일까. 그의 죽음에 심지어 조소까지 던져졌다. 과연 그렇게만 넘겨도 좋을까. 아니다. 고인은 삼성의 부사장 이전에 한국 전자업계의 인재다. 전 세계 삼성그룹 계열사 임직원 16만 명 가운데 단 13명의 최고급 기술자만 받은 이른바 ‘삼성 펠로우’의 한 사람이다. 1981년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1983년 카이스트 석사, 1989년 미국 스탠포드대학에서 전자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일본 통신업체를 거쳐 1992년부터 삼성전자에서 일해 왔다. 고인이 자살한 정확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고인의 아내가 경찰 진술에서 “남편이 인사 문제로 많이 괴로워했고, 못 마시는 술을 최근 자주 마시고 들어왔다”고 밝힌 대목만 전해질 뿐이다. 한 순간에 남편을 잃은 고인의 아내에게 진심으로 위로의 말을 전한다. 고인의 아내 심경을 헤아리며 문득 또 다른 삼성 직원의 아내가 떠올랐다. 삼성 부사장의 아내와 겹치는 해고노동자의 아내 박미경. 삼성 해고노동자의 아내다. 삼성SDI에서 1998년 해고당한 남편 송수근은 살아있다. 하지만 삼성에서 해고당하고 복직투쟁을 하던 중에 고통과 구속으로 건강을 잃었다. 장애등급 5급 판정을 받았다. 자신도 삼성에 몸담았었던 박미경씨는 <들꽃은 꺾이지 않는다>는 책을 펴내 남편의 억울함을 낱낱이 고발했다. 하지만 박미경씨의 외로운 싸움은 신문과 방송의 외면을 받았다. 힘이 모아지지도 않았다. 남편은 복직은커녕 건강을 잃었다. 행복했던 가정은 오랜 싸움으로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졌다. 물론, 삼성의 해고노동자 아내와 삼성전자 부사장의 아내는 상황이 다르다. 고 이원성이 삼성의 피라미드 구조 꼭대기에 있었다면 송수근은 몸으로 일하는 현장에 있었다. 하지만 공통점이 있다. 비인간적 기업문화와 살천스런 경쟁체제의 희생자라는 사실이 그것이다. 박미경씨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무람없이 “남편이 불쌍하다”고 토로했다. 어떤가. 삼성 해고노동자 아내의 그 말은 지금 삼성전자 부사장 아내의 심경 아닐까. 남편이 정녕 불쌍하지 않은가. 우리는 대한민국 전자산업의 최고급 인재를 어이없이 잃었다. 그가 왜 죽음을 선택했는지 가능하다면 고인의 아내가 나서서 증언해주길 나는 기대한다. 유서를 공개하고, 다시는 유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싸워야 옳다. 남편이 헌신해온 삼성전자의 미래를 위해서도 그렇다. 돈도 힘도 없던 해고노동자의 아내 박미경씨는 그 일을 지금까지 줄기차게 해오고 있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손석춘 2020gil@hanmail.net* 이 글은 ’손석춘의 새로운 사회’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블로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