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세대(Generation of Recession: 불황세대)라는 개념이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사회에 진출하고 있는 청년들을 일컫는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외환위기 이후 사회에 진출해 어려움을 겪었던 지금의 30대 중반 이후 세대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된다. 불황세대에 대한 우려는 이런 것이다. 글로벌 경제위기로 극심한 경기침체와 사회적 불안정성을 겪은 청년들이 모험적이고 성장성 있는 직업보다는 공무원과 같은 안정적인 직업을 선택하고 과감한 투자나 소비보다는 방어적으로 저축 등의 경제활동 패턴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청년들의 창조적 에너지가 약화되고 경제 전체의 활력마저 떨어질 것을 우려한 듯하다. 대학생들이 도서관에서 고시준비나 공기업 취업 준비에 몰두하는 것을 보면서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가 “다들 이렇게 안정성만 추구하다보면 경제가 활력을 잃는다”고 걱정했다던 최근 언론 보도도 이런 맥락이다. 이런 우려는 시점이 이미 한참 늦은 것이다. 미국 청년들은 2008년부터 불황세대의 특징이 나타나기 시작해 사회적 문제로 나타나고 있으나, 한국 청년들에게 이런 현상은 이미 지난 10년 동안 일반화된 모습이 됐기 때문이다. 이번 불황으로 그 정도가 심해졌을 수는 있지만 없던 현상이 새롭게 나타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한국 청년들은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아 고시·공무원 취업 준비에 몰두하기 시작했고 스펙(specification, 직장을 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학력·학점·토익 점수 따위를 합한 것을 이르는 말)을 높이기 영어를 포함한 각종 자격증 시험 준비에 시간을 쏟아왔다. 거의 대부분 고등학교 졸업자들이 대학에 진학하고 대학원에 진학한 결과, 한국 학생들의 학력이 세계 최고 수준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정책 당국자들은 마치 최근의 현상인 것처럼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다 보니 대책도 시점을 놓치고 있다. 정부는 청년을 포함한 신규 일자리 창출을 위해 이른바 ‘창업’ 절차를 대폭 간소화 해 도전적인 창업활동을 지원하겠다고 한다. 지금과 같은 불황에서 위험한 창업유도를 정책화하는 것이 과연 청년들에게 도전 정신을 키우는 합당한 일인가. 더구나 생계형 창업 등으로 인해 한 해에 자영업자가 무려 30만명 이상 폐업을 하는 국면에서 정당한 정책이라고 할 수 있는가. 오히려 “쉽고 편리하게 창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창업기업 수를 늘리고자 하는 현행 정책은 앞으로 그 실효성이 점차 약화될 우려가 있다”는 산업연구원의 지적이 더욱 문제의 핵심을 지적한 것은 아닌가.(산업연구원,2009.12.30, ’우리나라 창업 부진 실태와 시사점’) 더욱 우려할 것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과감한 투자나 소비를 꺼릴 수 있는 경향에 대해 묶어서 비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도대체 여유 자금도 없는 청년들과 젊은 세대들이 증권 투자나 금융상품 구입에 ‘과감’히 투자하는 것이 과연 청년들의 모험 정신이고 도전 정신일까, 아니면 청년들에게 마저 투기행위를 조장하는 행위일까. 한국 청년들에 대해 걱정해야 할 지점은 모험심 없이 ‘안정성’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앞으로 삶의 ‘안정성’마저 그 가능성이 극히 희박해지면서 미래 자체에 대한 불신, 사회 자체에 대한 불신을 키우지 않을까 하는 대목을 걱정해야 한다. 요즘 실업자와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 청년을 빗대어 ‘청년실신’이라는 신조어가 유행하고 있는 현실이 이를 증명한다. 따라서 기성세대가 우리 청년들에게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임무는 ‘미래에 대한 희망과 신뢰’의 끈을 놓지 않게 하는 것이며, 이를 위한 ‘안정적인 환경’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정부가 청년들의 일자리를 책임져 주고 대기업이 책임져 주는 자세를 보여 기성세대와 미래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게 함으로써 사회적 유대를 강화하는 것이다. 취업을 청년들의 스펙 탓, 눈높이 탓, 개인의 능력 탓으로 돌리는 순간 청년들이 갖게 될 절망의 크기는 커질 것이고 그 시점에 정말 우려해야 할 상황이 잉태될 것이다.. 김병권 bkkim21kr@saesayon.org * 매일노동뉴스 2010년 1월 21일자 칼럼으로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