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이 공격경영을 한다면 겁부터 나는 이유

By | 2010-01-08T10:02:48+00:00 2010.01.08.|

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에 이어 재계 총수들이 잇따라 신년 계획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표현은 다르지만 대체로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를 깔면서도 공식적으로는 ‘위기관리’ 또는 ‘비상경영체제’를 유지하겠다는 말로 요약된다. 주요 시중은행장들도 신년 사업구상을 발표했다. 유사한 논조이지만 ‘공격적인 경영’에 방점이 찍혀 있다. 지난 2년간 위기의 진원지였던 탓에 몸을 사리고 있다가 다시 기지개를 켜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은행장들의 공격경영 선언을 접한 솔직한 느낌은 ’이제 한국 금융시스템이 정상화되고 있구나’ 하는 생각보다는 걱정과 우려가 밀려든다는 것이다. 왜일까. 일반적인 사기업이라면 보수적 경영에서 벗어나 공격적인 경영을 한다는데 반대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국민 입장에서도 고용 확대나 더 나은 제품의 출시 등을 기대하며 환영해야 옳다. 그런데 은행이라면 사정이 좀 다르다. 지난 10여년의 역사를 돌이켜 보자. 특히 외환위기를 분기점으로 우리나라 은행들의 경영화두를 요약하면 ‘규모화, 겸업화’라고 할 수 있고, 그 목적은 ‘수익성 제고’였다고 할 수 있다. 2000년대에 은행들은 ‘매출 경쟁’, ‘자산규모 경쟁’을 하면서 주로 가계를 대상으로 대출을 끊임없이 늘렸다. 최근 5년만 해도 무려 220조원의 가계 대출이 늘어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한 은행들은 전통적인 예금·적금 상품 판매에 국한하지 않고 보험과 펀드까지 판매 영역을 확대했고, 속속 금융지주회사를 설립해 ’은행→카드→증권’ 등으로 시장 영역을 넓혀 갔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세계적으로 보면 아직 미미하다지만 자산 규모 200조원 이상의 은행들이 줄줄이 탄생하고 조 단위의 수익을 올리는 은행들이 일반화됐다. 규모로 보나 수익성으로 보나 이제 한국의 은행들은 핵심 대기업, 주요 공기업과 함께 한국 경제를 움직이는 거대 기업 반열에 오르게 된 것이다. 사적 기업이라면 놀라운 성장세와 경이적인 실적이라고 칭찬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은행 경영의 입장이 아니라 국민경제와 가계경제 입장에서 보면 사정이 달라진다. 은행들이 치열하게 규모·매출·수익성 경쟁을 벌이고 있는 동안 한국 경제는 수차례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 은행과 대기업들이 치열한 신용카드 판매 경쟁을 벌인 결과 2003년 카드대란이 찾아왔고 400만 신용 불량자 양산이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을 맞게 됐다. 2004년 이후 은행들의 주택담보 대출 경쟁은 부동산 가격 폭등이라는 국민경제의 이상 현상을 낳았다. 2007년 이후 본격화된 펀드 판매 경쟁 결과 수많은 국민들로 하여금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아 펀드 수익률 추락을 가슴조이며 지켜보게 했다. 규모 경쟁으로 과다한 대출을 푼 결과 은행들의 자산 건선성에 경고등이 켜졌고, 글로벌 금융위기를 국내에 확산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이 모든 후과로 지난해 은행들은 숨죽여 지낼 수밖에 없었고 국민경제와 국민은 부채로 고생해야 했다. 이런 역사를 가진 은행들이 다시금 규모 경쟁과 수익성 경쟁을 본격적으로 재개하겠다고 선언했으니 걱정이 앞서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것 아닌가. 금융위기로 잠시 잊었던 글로벌 메가뱅크 얘기가 연초부터 나오고 있다. 산업은행이 민영화 수순을 이미 밟고 있고, 외환은행 재매각에 시동이 걸리고 있으며, 정부가 본격적으로 우리은행 지분 매각에 나선다고 발표하면서부터다. 핵심 시중은행들인 KB국민·신한·하나은행이 인수합병 시장에 뛰어들면서 몸집을 키울 준비를 하고 있다. 이들이 매각 대상 은행들을 인수합병하면 3개 은행의 총자산 기준 시장 점유율이 75%를 넘게 된다. 뿐만 아니다. 연초부터 대출 금리인상 등을 통해 이자 수익을 개선(?)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가뜩이나 기준 금리에 대한 가산 금리가 3%대를 기록하고 있는 상황에서 다시 수익성 경쟁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들 은행들이 글로벌 메카뱅크로 도약하기까지는 앞으로도 과거 수준을 뛰어넘는 국민경제의 희생, 가계의 희생이 추가적으로 필요하다는 얘기로 들린다. 평범한 생활인으로서 두려움이 앞서는 이유다. 은행을 핵심으로 한 금융산업을 수익산업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실물경제의 안정화와 지속성장을 지원하는 인프라산업으로 볼 것인지는 논쟁의 대상일 수 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금융산업이 종전과 같은 수익추구를 재개하는 한, 국민 경제 붕괴의 위험성이 다시 높아질 수 있고 가계 경제가 살아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처음으로 되돌아가 보자. 우리 경제는 아직 위기탈출을 하지 못한 조건에서, 2010년 새해를 맞아 주요 시중은행들이 수익성 제고만이 아니라 최소한의 인프라 기능, 즉 ‘실물경제 회복을 위한 적극적인 자금 중개기능’을 어떤 식으로 하겠다는 신년구상은 왜 찾아볼 수가 없는 것인가. 하긴 은행이 한국경제를 위기에 빠뜨린 주요 책임자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에 대해서도 국민 앞에 반성한 것을 들은 기억도 없다. 그러면서 일회적인 사회공헌활동’을 생색내기로 하면 어느 국민이 칭찬을 하겠는가. 은행의 ‘인프라 기능’을 복원하기 위해 나서야 하는 정부는 편협하게 인사권에 개입해 ‘신관치’ 논쟁만 일으키고 있다. 은행의 행보가 걱정스러울 수밖에 없다. 김병권 bkkim21kr@saesayon.org * 매일노동뉴스 2010년 1월 6일자 칼럼으로 기고한 글입니다.

2 개 댓글

  1. bizkhan 2010년 1월 12일 at 6:28 오전 - Reply

    리먼사태로 우리나라의 외환문제가 발생한 것이 은행들의 무식한 단기 달러 차입금에서 발생한 것인데, 모든 부담은 국민들이 지고 은행들은 어떤 책임도 지지를 않는 희한한 구조입니다.
    장기 저금리 상태에서 예대마진이 사상 최대입니다.
    이런 행태는 수익만을 ?는 투기자본과 다를 바 없지요.
    민영화 은행들의 공적기능을 기대하기는 이제는 어렵다고 봅니다.
    거대은행들은 이미 외국 자본의 손에 넘어 갔다고 보아도 무리가 없을테니까요.

  2. bkkim21 2010년 1월 12일 at 9:48 오전 - Reply

    외환은행 관련 재미있는 기사가 실렸네요…요약하면 론스타가 소유하고 있는 외환은행에 대해 당초에는 올 1분기 안에 매각을 서두를려고 했는데…한국에서 은행이 이익도 잘 나고 있고, 글로벌 하게 한국만큼 이익을 낼 곳도 마땅치 않아 굳이 서둘러 매각하지 않기로 방향을 바꿨다는 겁니다…

    론스타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대규모 인수합병이 진행되는 곳이 한국 정도밖에 없어 상당한 투자성과를 올릴 수 있을것”이라고 발언했다네요….한국경제 잘 나간다고 칭찬만 할 수 없는 대목입니다.(서울경제 1월 12일자 기사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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